"사랑, 참 징하다. 사는 건 징글징글 맞고. 에이, 징한 것들아!!!!"
영화 시간 내내 속으로 쩟쩟 혀를 찬다.
한숨이 나온다.
큰 소리로 한 마디씩 해주고 싶다.
"에라이~~~ 징한 인간들아!"
산 송장처럼 누워 있는 인간들이나, 내내 기적이 일어날 거라며 몇 년을 지켜 있는 인간들이나...참, 징글맞다.
루게릭 병에 걸린 백종우는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장례지도사 지수를 만나 상복을 입고 국화꽃을 주며 정식으로 사귀자고 고백한다.
장례지도사라는 직업 때문에 두 번 이나 이혼 당해야 했던 지수는 장난으로 넘기면서도 시체 닦는 자신의 손이 가장 예쁜 손이라는 종우의 말 때문에 종우를 사랑한다.
이들의 결혼도 쉽고, 사는 것도 쉽고, 행복도 쉬웠고, 종우의 병 진행도 쉬웠다…
종우의 퇴원을 종용하던 의사는 종우의 상태가 말미에 왔음을 알고 재입원을 권유한다.
혼자서는 손발을 까딱할 수 없는 중증 환자 입원 6인실에서 겪는 환자와 그 가족들.
조그만 공간을 여섯 등분으로 나눠 자신의 공간에 살림을 차려버린 보호자들. 조악하기 그지 없다.
마치 옛날 달동네, 판자촌을 보는 듯 하다.
참 현실적이다.
가혹하고, 비루한 현식을 대변하는 의사.
“돈은 좀 있어?”
“아뇨.”
“그럼, 부모님이 부자야?”
“아뇨.”
“그럼, 퇴원해. 한 달에 한 번씩 정기치료 받고. 요즘 사람들이 뭐 아파서 죽나? 돈이 없어 죽지.”
그렇다. 요즘은 돈이 없어 죽는다.
누워서 눈동자만 움직일 수 있게 되는 종우가 가까스로 노트북 창에 쓰는 말.
대한민국 헌법 제 10조. 행복추구권.
그리고…
“이건 사는 게 사는 게 아냐. 날 좀 죽여줘.”
사랑인지, 질긴 미련인지, 뭣 때문인지 놓지 못하는 지수와 마찬가지로 9년을 한결같이 산 송장으로 누워있는 환자와 대화를 나눈다는 착각에 빠져 사는 병실의 보호자들,
그들이 버리지 못한 희망.
기적.
기적은 결코 없었다.
영화 중반까지도 덤덤하다. 잘 울고, 감정의 흐름을 잘 따라가는 편에 속하는 내가 덤덤하다.
그래서 내 감수성이 이제 무뎌진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결국 눈물은 흐르긴 흐른다.
같은 병실의 할머니. 남능미. 병원에서 산 세월 9년. 9년을 한결같이 송장처럼 누워 있는 남편. 그 남편과의 미래 어느 약속 시간이 다가오자 기적을 믿었던 할머니.
얼굴엔 기미가 가득 낀 추레한 모습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화면.
절대 가공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려 하지 않는 영화.
간만에 꽃단장을 하고 남편 앞에 섰건만, 남편은 여전히 송장.
입술에 묻은 구찌빼니를 닦아낸 할머니는 9년 만에 남편의 귀싸대기를 쳐댄다.
“죽어! 죽어! 죽어! 끝까지 나를 골탕먹여. 어찌 그래? 어떻게 나를 이렇게 골탕먹일 수 있어? 죽어!”
산 목숨의 질기디 질김 때문에 눈물이 나왔다.
그리고,
지수가 죽은 종우의 시체를 아주 행복한 얼굴로 염할 때.
“지수야, 부모님도 안 계시고 이제 나 혼잔데. 내 곁에 있다가 나 죽을 때도 네가 천국 보내줘라.”
저런 대쉬를, 저런 프로포즈를 할 수 있는 남자나, 받아들이는 여자나.
진짜 징한 것들.
루게릭. 불치병. 예고된 죽음, 헤어짐을 알고도 겁 없이 시작한 그 사랑이란 거...
어쩌면 사랑이 아닐 수도 있다.
아니, 처음부터 저게 사랑이 맞을까? 싶었다.
너무 쉽게 시작했잖아!!!!
사랑이라면 참 질펀하고, 전혀 가공 되지 않은 현실 그 자체의 삶에 대한 의무다.
사실, 영화 속 사람들에게 사랑이고 나발이고 생각할 겨를이나 있겠냐.
그냥, 미쳐서 사는 거지.
반미친 사람들처럼. 그러니까 그런 가족들을 곁에 두고 그 오랜 세월 그렇게 사는 것이지.
9년을 송장처럼 누워 있는 영감에게 잘생겼다고, 가렵냐고 말을 거는 할멈이나, 4년을 눈도 깜빡이지 않고 누워 있는 마누라를 섹시하다며 오이마사지까지 해주고 그런 마누라 사진 보고 공중 화장실에서 마스터베이션을 하는 남편이나 루게릭에 걸린 남편과 자신의 사랑은 진짜이고 그런 자신만이 진실한 사랑을 아는 줄 아는 부인이나.
“니들이 사랑을 알어?”
사실, 그렇게 말했지만 자기 자신도 사랑을 모르겠지.
결혼만 3번 해봤지만 그게 꼭 사랑이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아무튼, 남편복 지지리도 없고 팔자 기구한 년이다. 에라이~~
두 명한테는 이혼 당해 한 놈은 아파 죽어 생과부 만들어…
참, 징하다.
에이즈부터 납치 이젠 루게릭까지…
박진표 감독은 순수하고, 지고지순한 사랑을 말하려는 게 아닌 듯 싶다.
실화를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어 내는 박진표 감독.
어쩌면 자신이 영화를 만들면서 설득을 당해보려는 거 아닐까 싶다.
어쩜 저리도 모진 소재들만 가지고 영화를 만들어 내는지.
그렇다고 영화도 뽀샤시 하고 아름다운 게 아니다.
화면도 참 추레하고, 너무 현실적이고, 비루한 성욕, 성행위 자체도 아름답지 않다.
사랑에 대한 환상이 없는 멜로를 그려낸다.
최소한 눈에 씐 콩깍지조차 없다.
뼈와 거죽만 남은 백종우의 뒷모습. 그런 백종우가 되기 위해 몸에 있는 살은 죄다 빼버린 배우 김명민.
살아 있음을 보여주는 유난히 동그랗고 튀어나온 백종우의 눈. 그 눈이 사무치게 예뻤다.
남아 있는 게 그거 하나뿐이니까.
김명민은 맡는 역할마다 인간 김명민의 생명 줄을 끊어 놓기 직전까지 가는 듯 싶다.
김명민의 연기는 말할 거 없이 닥치고 명품이야.
참 징한 감독과 징한 배우다.
영화 속에서 지수와 종우가 자주 부르는 노래 김돈규, 에스더의 “다시 태어나도”는…그 가사가 귀에 들어오면 “다 집어치워!!!!”라고 소리를 빽 지르고 싶다.
“내 마음 다해 그대를 행복하게 해줄 거야. 그대가 다시 태어 나도 날 또 다시 만날 수 있있게.”
나 같으면 현실에서 질리고 아파 다음 생에는 너와 내가 짐승과 사람으로도 만나지 말자고 할 것 같아.
그런데 무슨 이생까지. 그건 차라리 공포야.
그래도 피 나누고, 살 붙이고 산 사람들은 그게 아닌지.
6년 전에 3대 독자인 우리 외사촌 오빠 사고로 죽었을 때, 한 며칠 병원에서 식물인간으로 누워 있다 가셨을 때 정신 잃고 울던 외숙모에게 외사촌 언니가 "엄마 왜 그래. 그래도 오빠 그냥 식물인간으로 누워 있는 것 보단 차라리 낫잖아" 이런 소리 듣고 온 엄마가 "형제랑 부모랑은 또 다르구나~~~~" 하시더라.
그 말 듣고 있던 작은어머니도 "어떻게 죽는 게 나? 식물인간으로라도 살아 있는게 났지" 하시던데.
그게 자식 낳고 살아본 부모님들의 힘인지...
거기까지는 모르겠으니. 아직 내가 한참 덜떨어져도 덜떨어진게 맞나 보다.
죽은 놈만 불쌍하지, 산 사람은 어떻게든 살게 돼 있어. 이말도 참 이해 안됐다. 지겨운 세상 떠난 사람은 훌훌 털고 떠났으니 얼마나 홀가분해. 남아서 뒷처리 해야 하는 사람만 억울하지 싶었는데,
몇 년 전에 사랑했던 애인 저 세상으로 보내고 딱 일 년 만에 결혼해 아들 낳고 사는 친구가 "그래서 죽은 사람만 불쌍하다고 하는 거야. 새로운 사랑 나타나면 백프로 잊혀져. 산 사람은 어떻게든 살게 돼 있어" 라고 덤덤하게 말 할 땐 진짜 그런가 싶었다.
비얌꼬랑지~~~~~김현식 오라방은 저 세상에서 잘 살고 계실까. 소주 맘껏 드시면서 담배 열라 피워대면서 좋아하는 음악하시면서…